서론: 말발굽 소리에 실린 혁명

1784년 8월 2일 아침 8시, 영국 브리스톨의 우체국 앞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존 팔머(John Palmer)가 고안한 최초의 정기 우편마차가 런던을 향해 출발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우편은 도보 우편배달부나 개인 기사들에게 의존했고, 배달 시간은 예측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팔머의 새로운 시스템은 달랐습니다. 정확한 시간표, 무장 경비, 그리고 무엇보다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18세기 유럽,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우편마차 노선이 어떻게 관리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지루해 보이는 이 행정 시스템이 실제로는 현대 물류와 통신망의 기초를 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편마차 시스템의 구조와 조직

중앙 집중식 관리 체계

18세기 중반이 되면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우편을 국가 독점 사업으로 운영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우정청(General Post Office, GPO)이 모든 우편 서비스를 총괄했습니다. 이 조직은 다음과 같은 계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상위: 우정청장(Postmaster General)
국왕이 임명하는 고위 관료로, 우편 시스템 전체를 책임졌습니다. 이 직책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했는데, 우편물을 통제하면 정보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간 계층: 지방 우정청장(Deputy Postmasters)
주요 도시마다 배치되어 해당 지역의 우편 업무를 관리했습니다. 런던, 에든버러, 더블린 등 주요 거점 도시에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지방 우정청장이 있었습니다.

하위 계층: 역참장(Postmasters of Stages)
우편마차가 말을 갈아타는 역참마다 역참장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말의 관리, 마부의 대기, 우편물의 중계를 책임졌습니다.

실무진: 마부, 경비, 역참 직원
실제로 마차를 운전하고, 우편물을 지키고, 말을 돌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선 설계의 원칙

18세기 우편마차 노선은 무작위로 결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정청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노선을 설계했습니다:

1. 주요 도시 간 직선 연결
가능한 한 최단 경로로 주요 도시들을 연결했습니다. 예를 들어, 런던-브리스톨 노선은 119마일(약 191km)이었고, 이는 당시 도로 여건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로였습니다.

2. 역참 간 거리의 표준화
이상적으로는 10-15마일(16-24km) 간격으로 역참을 배치했습니다. 이는 말 한 필이 전력 질주 없이 견딜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말들은 역참에서 교체되었고, 한 팀의 말은 하루에 한 번만 사용되었습니다.

3. 전략적 요충지 확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점들을 반드시 경유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우편 서비스가 단순히 편지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4. 지형적 고려사항
언덕, 강, 숲 등 자연 장애물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려운 구간에는 추가 말을 배치하거나 특별 장비를 비치했습니다.

역참의 물리적 구조와 시설

역참은 단순한 휴게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잡한 물류 거점이었습니다. 전형적인 18세기 역참은 다음과 같은 시설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마구간(Stables)
최소 12-16필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 마구간이 필수였습니다. 우편마차 한 대에는 4필의 말이 필요했고, 교대조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말이 필요했습니다. 마구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 각 말을 위한 개별 칸막이
  • 사료 보관소 (건초, 귀리, 밀기울)
  • 물 공급 시설
  • 마구와 안장 보관실
  • 대장간 (간단한 편자 수리용)

우편물 분류실
도착한 우편물을 분류하고 다음 마차에 실을 우편물을 준비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에는 목적지별로 라벨이 붙은 선반들이 있었고, 저울과 인장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대기실과 숙소
마부들과 경비원들을 위한 대기실이 있었습니다. 주요 역참에는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간단한 숙소도 제공되었습니다. 여행객들을 위한 별도의 대기실도 있었는데, 계급에 따라 공간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역참장 사무실
각종 기록과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보관되었습니다:

  • 우편마차 통행 기록부
  • 말의 건강 상태 기록
  • 직원 근무 일지
  • 수입과 지출 장부
  • 긴급 상황 대응 매뉴얼

시간표 관리와 운영의 정밀성

엄격한 시간표 준수

18세기 우편마차 시스템의 가장 혁명적인 측면은 정확한 시간표였습니다. 존 팔머가 1784년에 도입한 시스템에서 런던-브리스톨 구간은 정확히 16시간이 걸리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이전의 38시간에 비해 절반 이상 단축된 것이었습니다.

시간표는 분 단위로 작성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런던-에든버러 노선의 1790년 시간표를 보면:

  • 런던 출발: 오후 8시 정각
  • 웨어(Ware) 도착: 오후 10시 15분 (21마일)
  • 번틀리(Buntingford) 도착: 오전 12시 30분 (33마일)
  • 로이스턴(Royston) 도착: 오전 2시 15분 (42마일)
  • (이하 계속...)

각 역참마다 정확한 도착 시간과 출발 시간이 명시되어 있었고, 역참장들은 이를 엄격히 준수해야 했습니다. 지연이 발생하면 그 이유를 상세히 보고해야 했습니다.

시간 측정과 동기화

정확한 시간 관리를 위해서는 모든 역참이 같은 시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는 표준시가 없었습니다. 각 마을은 자신의 태양시를 사용했고, 런던과 브리스톨 사이에는 약 10분의 시차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정청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런던 시간의 표준화
모든 우편마차는 런던 시간을 기준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각 역참에는 우정청이 제공한 시계가 비치되었고, 이 시계들은 정기적으로 런던의 표준 시계와 동기화되었습니다.

우편마차를 통한 시간 전파
흥미롭게도, 우편마차 자체가 정확한 시간을 전파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마부들은 정확히 조율된 시계를 가지고 다녔고, 각 역참은 마차가 도착하면 자신들의 시계를 조정했습니다.

지연 관리 시스템

아무리 정교한 계획이라도 지연은 불가피했습니다. 18세기 우정청은 이를 관리하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허용 지연 시간
각 구간마다 "합리적인" 지연 시간이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날씨가 좋은 날에는 5분 이내의 지연은 용인되었지만, 악천후 시에는 최대 30분까지 허용되었습니다.

단계별 대응 절차

5-15분 지연: 역참장이 기록하고 다음 구간에서 시간을 만회하도록 마부에게 지시

15-30분 지연: 역참장이 즉시 다음 역참에 전령을 보내 대기 준비를 강화하도록 알림

30분-1시간 지연: 지방 우정청장에게 보고하고, 추가 말과 인력을 동원하여 시간 만회

1시간 이상 지연: 중앙 우정청에 긴급 보고하고, 대체 경로나 임시 마차 투입 검토

지연 사유 분류

역참장들은 지연이 발생하면 다음과 같은 분류 체계에 따라 사유를 기록해야 했습니다:

  1. 날씨 관련 (비, 눈, 안개, 홍수 등)
  2. 도로 상태 (진흙, 파손, 공사 중 등)
  3. 말 관련 (질병, 부상, 편자 탈락 등)
  4. 마차 관련 (고장, 사고, 파손 등)
  5. 우편물 과다
  6. 인적 오류 (마부 지각, 역참 준비 미흡 등)
  7. 예기치 못한 사건 (강도, 사고, 도로 통제 등)

이러한 기록들은 매월 집계되어 우정청으로 보고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인력 관리와 교육

마부의 선발과 교육

우편마차 마부는 단순히 말을 모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였으며, 다음과 같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했습니다:

기본 자격

  • 최소 25세 이상, 최대 50세 이하
  • 읽고 쓰기 능력 (우편물 목록을 읽고 기록해야 함)
  • 5년 이상의 마차 운전 경험
  • 무사고 운전 기록
  • 신체 건강과 시력 양호
  • 추천서 2통 (전 고용주와 지역 성직자로부터)

전문 기술

마부 지망생들은 3-6개월의 견습 기간을 거쳤습니다. 이 기간 동안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말 다루기: 4필의 말을 동시에 제어하는 기술. 이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각 말은 성격이 달랐고, 팀워크가 중요했습니다.

경로 숙지: 담당 노선의 모든 길을 외워야 했습니다. 어디에 위험한 커브가 있는지, 어디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대체 경로는 어디인지 등을 파악해야 했습니다.

기상 판단: 날씨를 읽고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 안개가 끼면 속도를 줄이고, 눈이 오면 말에게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응급 처치: 말이 다쳤을 때, 마차가 고장 났을 때, 또는 승객이 아플 때 기본적인 대응 방법을 알아야 했습니다.

자기방어: 무장 경비가 동행했지만, 마부 자신도 강도로부터 자신과 우편물을 지킬 수 있어야 했습니다.

보수와 복지

마부들의 보수 체계는 복잡했지만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기본급
주당 15-20실링이 기본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숙련 노동자의 평균 임금보다 약 50%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성과급
정시 도착 보너스가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모든 운행을 정시에 완료하면 추가로 2-3파운드를 받았습니다.

팁 수입
승객들로부터 받는 팁이 상당했습니다. 우편마차는 소량의 승객도 태웠는데, 이들은 안전한 여행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부에게 팁을 주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주당 5-10실링을 추가로 벌 수 있었습니다.

복지 혜택

  • 유니폼 제공: 연 2회 새 유니폼이 지급되었습니다. 이는 검은색 코트, 모자, 장갑, 부츠로 구성되었습니다.
  • 식사 보조: 역참에서의 식사가 제공되거나 식비가 지급되었습니다.
  • 숙소: 장거리 노선의 경우 숙박이 제공되었습니다.
  • 의료 지원: 업무 중 부상 시 치료비가 지급되었습니다.
  • 퇴직 연금: 20년 이상 근무한 마부에게는 소액의 연금이 제공되었습니다.

역참 직원의 일상

역참장과 그의 직원들의 하루는 매우 바빴습니다. 전형적인 하루를 살펴보겠습니다:

새벽 4시

  • 첫 우편마차 도착 1시간 전 기상
  • 마구간 점검, 말들에게 사료 제공
  • 교체할 말들을 골라 준비

새벽 5시

  • 첫 우편마차 도착
  • 지친 말을 교체하고 새 말을 마차에 연결 (3-5분 내에 완료해야 함)
  • 우편물 분류 및 적재
  • 마부에게 도로 상황과 날씨 정보 제공

오전 6시-저녁 9시

  • 하루 종일 여러 대의 우편마차가 통과
  • 각 마차마다 위의 과정 반복
  • 틈틈이 말 건강 체크, 마구간 청소, 마구 수리
  • 우편물 기록 정리

저녁 9시

  • 마지막 우편마차 출발 후 정리 작업
  • 하루 업무 일지 작성
  • 다음 날 준비 (사료 준비, 말 배정 등)

밤 10시

  • 취침 전 마지막 마구간 순회
  • 야간 당직자에게 업무 인계

계절별 운영 전략

겨울철 대응

겨울은 우편마차 운영에 가장 어려운 계절이었습니다. 18세기의 겨울은 오늘날보다 훨씬 추웠으며(소빙하기), 눈과 얼음이 큰 문제였습니다.

특별 장비

겨울철에는 다음과 같은 특별 장비가 사용되었습니다:

  • 특수 편자: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스파이크가 달린 편자
  • 썰매형 마차: 깊은 눈이 쌓인 지역에서는 바퀴 대신 썰매를 사용
  • 추가 담요: 말과 승객을 위한 방한용 담요
  • 삽과 곡괭이: 눈을 치우고 얼음을 깨는 도구
  • 랜턴: 짧은 낮 시간 때문에 더 많은 조명이 필요

인력 증원

겨울철에는 각 역참에 추가 인력이 배치되었습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 도로의 눈 치우기
  • 위험한 빙판 구간에 모래나 재 뿌리기
  • 긴급 상황 시 구조 활동
  • 얼어붙은 우물 대신 사용할 물 운반

비상 계획

극심한 눈보라나 한파가 예상되면 다음과 같은 비상 계획이 발동되었습니다:

  1. 출발 지연 또는 취소 결정 (중앙 우정청의 승인 필요)
  2. 대체 경로 사용 (눈이 덜 쌓인 우회로)
  3. 임시 숙소 설치 (마부와 승객이 고립될 경우를 대비)
  4. 구조대 대기 (주요 거점에 말과 인력 배치)

여름철 관리

여름은 겨울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고유한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말 건강 관리

더위는 말들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여름철 말 관리 지침:

  • 더 자주 물 제공: 각 역참마다 말에게 물을 먹이되, 한 번에 너무 많이 마시지 않도록 주의
  • 휴식 시간 연장: 말 교체 시간을 평소보다 2-3분 더 줌
  • 그늘 활용: 가능한 한 그늘진 길을 택하고, 역참의 마구간에 통풍 개선
  • 파리 대책: 파리가 말을 괴롭혀 놀라게 할 수 있으므로, 특수 그물이나 허브를 사용하여 방지

도로 상태 문제

여름 폭우는 도로를 진흙탕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영국의 비포장 도로는 비가 오면 거의 통행 불가능해졌습니다. 대응책:

  • 도로 보수 집중: 여름은 도로 보수의 주요 시기였습니다
  • 대체 경로 확보: 주요 노선마다 2-3개의 대체 경로 유지
  • 배수 관리: 역참 주변의 배수로를 정기적으로 청소

위기 관리와 보안

강도 대응 시스템

18세기 영국의 하이웨이맨(highway robbers)은 로맨틱하게 묘사되곤 했지만, 실제로는 우편 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이었습니다. 우정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층적 보안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무장 경비

1784년부터 모든 우편마차에는 무장 경비가 동승했습니다. 이들은:

  • 블런더버스(blunderbuss)라는 대구경 단총으로 무장
  • 권총 2정 추가 소지
  • 검 또는 곤봉 휴대
  • 경적으로 위험 신호나 도착 신호 전달

경비들은 전직 군인 중에서 선발되었으며, 사격과 근접 전투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측 불가능성 전략

강도들이 우편마차의 일정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

  • 출발 시간을 가끔씩 15-30분 변경
  • 같은 노선에 다른 유형의 마차를 무작위로 배치
  • 가짜 우편마차를 운행하여 강도를 교란
  • 고가 화물이 실렸을 때는 경로를 비밀리에 변경

지역사회 협력

각 지역 주민들에게 우편마차 보호에 협조하도록 장려했습니다:

  • 수상한 인물 목격 시 가장 가까운 역참에 신고
  • 강도 사건 발생 시 즉시 추격대 편성
  • 우편마차 공격범 체포 시 포상금 지급 (50-100파운드)

사고 대응 매뉴얼

마차 전복, 말의 부상, 화재 등 각종 사고에 대한 상세한 대응 매뉴얼이 있었습니다.

마차 전복 시

  1. 즉시 말들을 진정시키고 마구에서 분리
  2. 부상자 확인 및 응급 처치
  3. 우편물의 손상 여부 확인
  4. 가장 가까운 역참이나 마을에 구조 요청
  5. 우편물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
  6. 대체 마차나 말 확보
  7. 사고 경위를 상세히 기록

우편물 손실 시

우편물 분실은 극히 심각한 사안이었습니다:

  1. 즉시 수색 시작
  2. 마지막 역참부터 현재 위치까지 경로 역추적
  3. 72시간 이내에 발견되지 않으면 중앙 우정청에 공식 보고
  4. 발신인과 수신인에게 통지
  5. 조사 개시 및 책임자 특정
  6. 고의성이 발견되면 형사 처벌 (우편물 절도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

기술 혁신과 효율성 개선

마차 디자인의 발전

18세기 동안 우편마차의 디자인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초기 디자인 (1780년대)

  • 무게: 약 18 헌드레드웨이트 (약 910kg)
  • 승객 수용: 4명 (내부)
  • 우편물 적재량: 약 1 헌드레드웨이트 (약 50kg)
  • 주요 문제: 무겁고 느림, 자주 고장남

개선된 디자인 (1790년대)

  • 무게: 약 12 헌드레드웨이트 (약 610kg) - 33% 경량화
  • 승객 수용: 4명 (내부) + 6명 (외부 좌석)
  • 우편물 적재량: 약 3 헌드레드웨이트 (약 150kg)
  • 주요 개선: 스프링 개선, 차축 강화, 방수 처리

혁신 사항들:

타이어 개선: 나무 바퀴에 철띠를 두르는 방식에서, 더 넓고 내구성 있는 철 타이어로 전환. 이는 도로 손상도 줄이고 승차감도 개선했습니다.

서스펜션 혁신: 가죽 끈으로 마차를 매다는 방식에서 강철 스프링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경. 이는 충격 흡수를 크게 개선했습니다.

유선형 디자인: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한 초기 시도. 앞부분을 둥글게 만들고 불필요한 돌출부를 제거했습니다.

안전 장치: 브레이크 시스템 개선, 마차 전복 시 승객을 보호하는 안전 바, 비상 탈출구 추가.

통신 시스템의 발전

우편마차 시스템 자체가 통신 수단이었지만, 시스템 운영을 위한 내부 통신도 중요했습니다.

신호 체계

경적을 이용한 신호 체계가 발전했습니다:

  • 1회 짧은 소리: 정상 도착
  • 2회 짧은 소리: 소량 지연
  • 3회 짧은 소리: 긴급 상황
  • 긴 소리: 다음 역참에 즉시 준비하라는 신호

역참에서는 깃발 신호로 응답했습니다:

  • 흰색 깃발: 준비 완료
  • 붉은색 깃발: 대기 필요
  • 검은색 깃발: 긴급 문제 발생

기록 시스템의 표준화

1790년대에 우정청은 모든 기록 양식을 표준화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점을 제공했습니다:

  •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용이해짐
  • 다른 역참이나 노선과의 비교가 가능해짐
  • 오류 감소 및 책임 소재 명확화
  • 신규 직원 교육이 쉬워짐

표준 양식에는 다음이 포함되었습니다:

  1. 일일 운행 기록부 (마차 도착/출발 시간)
  2. 말 건강 기록부 (각 말의 컨디션, 먹이, 운동)
  3. 우편물 추적 기록 (봉지 번호, 중량, 출발지/목적지)
  4. 수입/지출 장부
  5. 사고/지연 보고서
  6. 인사 기록부

결론: 시스템의 유산

18세기 유럽의 우편마차 노선 관리 시스템은 표면적으로는 지루해 보이는 행정적 세부 사항들의 집합처럼 보입니다. 시간표, 말 관리, 기록 보관, 인력 배치 등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기사들의 결투나 왕실의 음모만큼 극적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지루한" 시스템이야말로 현대 세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우편마차 관리 시스템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현대적 개념들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류와 공급망 관리
오늘날의 택배 회사들이 사용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 시스템, 실시간 추적, 시간표 최적화는 모두 18세기 우편마차 시스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마존이나 FedEx의 물류 센터는 본질적으로 18세기 역참의 현대판입니다.

표준화와 프로세스 관리
표준화된 양식, 절차 매뉴얼, 성과 측정 지표 등 현대 경영학의 핵심 개념들이 이미 우편마차 시스템에 존재했습니다. ISO 인증이나 린 경영 같은 현대적 방법론의 씨앗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정보의 민주화
우편마차 시스템은 정보를 빠르고 신뢰성 있게 전달함으로써 계급에 관계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소식과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는 계몽주의 사상의 확산과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시간 개념의 변화
우편마차의 정확한 시간표는 사람들이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대충 오전 중"이 아니라 "정확히 오전 10시 15분"이라는 정밀한 시간 개념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이는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든 중요한 문화적 변화였습니다.

직업 전문화
우편마차 마부는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전문 운전사"였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말을 모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기술과 지식을 요구하는 전문직에 종사했습니다. 이는 현대의 전문직 개념의 시초였습니다.

존 팔머가 1784년에 시작한 시스템은 19세기 내내 개선되고 확장되었습니다. 1830년대에 철도가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편마차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편마차 시스템이 개발한 관리 기법, 조직 구조, 시간표 시스템이 그대로 철도 운영에 적용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 - 정시 배송, 화물 추적, 고객 서비스, 품질 보증 - 은 모두 18세기 우편마차 시스템에서 처음 개발되었습니다. 다음에 택배를 받거나 정시에 버스가 도착할 때, 그것이 250년 전 영국의 시골길을 달리던 우편마차에서 시작된 전통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역사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혁명은 종종 조용하고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것은 전장이 아니라 장부책 속에서, 왕궁이 아니라 역참의 마구간에서 일어납니다. 우편마차 노선 관리 시스템은 바로 그러한 조용한 혁명의 완벽한 예입니다.

FAQ

Q1: 우편마차로 편지를 보내는 비용은 얼마였나요?

A1: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편지 우편 요금은 거리와 무게에 따라 달랐습니다. 런던에서 80마일 이내는 4펜스, 80-150마일은 5펜스, 150마일 이상은 6펜스였습니다. 이는 당시 숙련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2-18펜스였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편지를 받는 사람이 요금을 지불했습니다(수신자 부담). 1840년에 페니 포스트(Penny Post) 제도가 도입되면서 전국 어디든 1펜스로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발신자가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Q2: 우편마차는 얼마나 빨랐나요?

A2: 18세기 후반 우편마차의 평균 속도는 시속 7-8마일(약 11-13km)이었습니다. 이는 현대 기준으로는 매우 느린 것 같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습니다. 이전의 도보 우편배달은 하루 30-40마일을 갔지만, 우편마차는 24시간 운행하여 하루에 100-120마일을 주행할 수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는 약 60시간(2.5일)이 걸렸는데, 이는 이전의 2주에서 크게 단축된 것이었습니다. 가장 빠른 구간은 평지의 좋은 도로에서 시속 10-12마일까지 낼 수 있었습니다.

Q3: 우편마차에서 승객도 태웠나요?

A3: 네, 우편마차는 우편물 운송이 주 목적이었지만 승객도 태웠습니다. 내부에 4명, 외부 좌석(지붕 위)에 6명까지 탈 수 있었습니다. 내부 좌석이 훨씬 비쌌습니다(런던-브리스톨 구간이 약 2파운드). 외부 좌석은 절반 가격이었지만 날씨에 노출되어 불편했습니다. 승객 요금은 우정청의 중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편물이 항상 우선이었고, 우편물이 많으면 승객 수를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Q4: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어떻게 했나요?

A4: 극심한 눈보라의 경우 우편마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는 극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우정청의 모토는 "우편물은 반드시 전달되어야 한다"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대응했습니다: (1) 추가 말을 투입하여 눈길을 뚫고 감, (2) 바퀴 대신 썰매를 사용, (3) 지역 주민들을 고용하여 길을 뚫음, (4) 필요시 우회로 사용. 1814년의 대설 때도 런던-에든버러 노선은 단 하루도 중단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평소 60시간이 걸리던 여정이 5일이 걸렸습니다.

Q5: 우편마차 강도는 실제로 얼마나 흔했나요?

A5: 대중문화에서 묘사되는 것보다는 덜 흔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1780년대 초반 무장 경비가 배치되기 전에는 런던 근교에서만 연간 20-30건의 우편마차 강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무장 경비 도입 후 사건 수는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179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연간 5-10건 정도로 줄었습니다. 대부분의 강도들은 총격전을 피하고 쉬운 표적(무장하지 않은 일반 마차나 단독 여행자)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우편마차 공격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고, 실제로 많은 강도들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우편마차 강도였던 딕 터핀(Dick Turpin)은 1739년에 처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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